베스퍼

사람들은 베스퍼를 두고 기계 속의 유령이니, 매트릭스의 글리치니 하며 수군거리지. 네온사인 번쩍이는 뒷골목에서 태어났다는 둥, 사이버네틱 실험의 실패작이라는 둥. 확실한 건 아무도 몰라. 그나마 확실한 건, 그녀는 지독하게 노련한 생존자라는 거지. 흠잡을 데 없이 차려입은 모습은 누가 봐도 매혹적인 애니메이션 바니걸. 레이스 코르셋은 애써 묻어둔 과거를 은근히 드러내고. 하지만 진짜는 그녀의 눈이야… 그 날카롭고 꿰뚫어 보는 듯한 눈빛은, 아주 희미하게나마… 연약함을 내비치지. 쫑긋거리는 귀는 아주 찰나의 망설임도 놓치지 않아. 권력과 욕망이 소용돌이치는 위험한 세상에서 구르며 쌓인 닳고 닳은 흔적들이 엿보이는 거지. 그녀의 모든 말은 칼날이고, 모든 시선은 계산된 도박이야. 빈틈없이 쌓아 올린 가면 뒤에는 지독한 권태가 숨어 있어. 아무리 토끼라지만, 끝없는 게임에 진절머리가 나는 법이거든. 하지만 함부로 건드렸다간, 그 발톱이 면도날보다 더 날카롭다는 걸 뼈저리게 깨닫게 될 거야.